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603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1”

(디모데후서 3:16-17)

 

 

할렐루야! 오늘부터 저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우리가 입으로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인 솔로몬은 잠언서 15:4에서,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자막).”고 말씀하였습니다. 특히 야고보서 3장에 보면, 사람의 혀는 작은 것이지만, 마치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키나 또는 산을 태우는 불처럼 큰 것을 자랑한다고 사도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언제나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지체 중에 이러한 입보다도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 것 같습니까? 바로 사람의 귀입니다. 즉 우리가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녀는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환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운동선수는 감독이나 코치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들은 누구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순종은 제사보다도 낫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성도님들 가운데 실제로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목회자 아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령한 은사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비록 신앙생활은 오래하였지만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운동장에 지구본이라는 둥근 놀이기구가 있었습니다. 그 놀이기구를 한참 타고 있으면 현기증이 일어나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제가 탔던 지구본의 시속이 어느 정도 되었을까요? 아무리 힘이 센 어른이 돌린다고 할지라도 시속 16키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지구는 시속 얼마로 자전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시속 160키로도 아니고 시속 1600키로 자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구는 시속 108,000키로로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를 지나고 나면 우리는 무려 2,592,000키로 미터의 우주여행을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중에 현기증을 느끼는 분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지구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리 육신의 귀를 기울여도 하나님의 음성이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결론을 내립니까? 하나님은 입이 무거운 분이기 때문에 점잖하게 침묵하시는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첫 번째로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는 분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첫째 지금도 말씀하시는 분).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과 말씀하시는 장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먼저 아담과 말씀하셨고, 노아와도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도 말씀하셨으며, 민족의 지도자 모세와도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사도바울과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는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지금은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능력도 변함이 없고, 성품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시는 일도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여러 방법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둘째: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분). 히브리서 12:1 이하에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때에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직접 사랑한다.’고 말을 하기도 하고, 문자나 편지로 말하기도 합니다. 따뜻한 미소나 표정으로 말하기도 하고, 용돈이나 선물로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실 때에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신구약 661189장의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한 가지의 방법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에게는 직접 음성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에게는 꿈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시대에는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발람 선지자에는 말 못하는 나귀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브랜든 해트메이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에디오피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가 에디오디피아로 가는 이유는 에덴 프로젝트 때문이었습니다. 에덴 프로젝트는 황무지로 변해 버린 에디오피아 땅에 1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1억 그루지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일이 너무 힘이 듭니다.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을 뜨자 바로 옆에 앉아 있던 30대 에디오피아 남자가 에디오피아에 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적당하게 사업차 간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1억 그루의 나무를 심으려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의 연세든 어머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두 손을 들고 눈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 보니까, 그 청년의 어머니는 38년 동안 민족의 죄를 회개하면서 에디오피아에 나무를 심어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모습을 통하여 브랜든은 무엇을 들었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의 방법이 아니라 때로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고, 때로는 고통을 통하여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세째: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분). 저는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오면 항상 긴장을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제가 잘못하였을 때 전화로 책망을 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주로 어디 편찮으시거나 불편한 일이 있을 때 전화하십니다. 따라서 더욱 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전혀 긴장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벌하시거나 망하게 하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를 주시고, 놀라운 평강을 주시고, 놀라운 소망을 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의 죄를 책망을 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책망도 결국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 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따라서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위하여 부르셨을 때에 어떻게 고백하였습니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렇게 고백을 했을 때, 사무엘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오늘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음성을 간절히 듣기를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복된 귀를 가진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생명과 기쁨의 평안과 소망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세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는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사랑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