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520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7”

(사도행전27: 22- 26)

 

 

할렐루야 오늘도 저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23일 동안 서울 충현교회에서 있었던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기도회 첫날 저녁에 말씀을 전하신 강사 목사님은 전국에서 모인 3200명의 목사님과 장로님을 향하여 지금 한국교회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는 지를 설명하면서, ‘퍼펙트 스톰(자막)’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영어로 퍼펙트 스톰이란 아무도 버틸 수 없는 완벽한 폭풍이라는 말인데요, 원래 이 말은 2000년에 개봉된 영화제목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 영화를 보면 5명의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서 대서양으로 나갔다가 결국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풍으로 인하여 배가 침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배를 침몰 시켰던 폭풍은 처음에는 별로 위력적이지 않았는데요, 나중에 비슷한 위력을 가진 폭풍과 충돌하면서 엄청나게 큰 파괴력을 발휘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폭풍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퍼펙트 스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퍼펙트 스톰은 대서양 한가운데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평상시 생활하고 있는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에서도 이런 폭풍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에 도움이 되는 호재를 만날 때도 있고, 반대로 백해무익한 악재를 만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악재라는 폭풍이 한 개만 불어와도 견디기가 힘이 드는데, 두 세 개의 악재가 동시 다발적으로 몰려오면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가리켜서 퍼펙트 스톰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도 합니다. 한자성어로 설상가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나에게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제도 예외가 아닌데요, 제가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에, 교회 승합차를 운전해서 권사님들 열 분 정도 모시고 지방으로 문상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추운 겨울철 밤이었는데요, 중앙고속도로 곤지암 근처에 있는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차 뒷바퀴의 축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차체와 도로가 마찰되면서 그만 차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당황하였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승합차가 갓길에 멈추어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권사님들을 차에서 내리게 한 다음 불을 껐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요즘처럼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보험사나 119에 전화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깜깜한 밤에 찬바람을 맞으면서 권사님들과 함께 제일 가까운 휴게소까지 걸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퍼펙트 스톰이 저에게만 있었겠습니까? 여기 계신 성도님들도 그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으시면서 이러한 폭풍을 여러 차례 경험하신 줄 압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폭풍 한 가운데를 지나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분들은 찬송가 가사처럼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가 못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일 것입니다. 심지어 기도할 힘마저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망의 바다 한 가운데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빌립보서 4장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라.’ 솔직히 저는 목사로서 완벽한 폭풍의 한 가운데 있는 성도님들에게 이 말씀대로 사십시오.’라고 설교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너무나 황당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거대한 폭풍을 바라보면서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처럼 황당한 말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바울이 태어날 때부터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즉 단 한 번도 인생의 폭풍을 만나보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서 빌립보서를 기록하기 불과 얼마 전에 실제로 바다 한 가운데서 거대한 폭풍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시간 관계상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3차 전도여행을 마친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가 유대인들의 고소로 로마군인들에게 체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1절 이하에 보면, 그는 황제 앞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서 로마로 압송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면,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그레데 섬을 지나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유라굴로는 북풍이라는 말과 동풍이라는 말이 합쳐진 단어인데요, 한마디로 북동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광풍은 그레데 섬의 한 가운데 있는 높은 산맥에서 형성된 두 개의 기류가 맞부딪힐 때 일어나는 광풍입니다.

 

그러자 사도바울이 탄 배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15절에 보면, 배가 방향을 잃고서 바람 부는 대로 떠밀려갔다고 했습니다. 18절에는 이튿날에 사공들이 짐을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19절에 보며나,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들도 버렸다고 했습니다. 20절에 보면,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배 멀미 하면 생각나는 섬이 있습니다. 바로 울릉도입니다. 울릉도에 가다가 서너 시간동안 멀미를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힘드셨는지 망치로 창문을 깨고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일행들은 서너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해도, 별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배가 하늘도 치솟았다가 바다로 곤두박질하는 것을 무려 14일 동안이나 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원들은 식사할 의욕도 잃어버렸고, 심지어 살 소망까지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퍼펙트 스톰을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바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22절에 보면, ‘이제는 안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5절에도 역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보았기 때문입니다(자막). 무엇을 보았습니까? 23절에 보면, 지금 사도바울은 어제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곁에 서서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의미합니다. 물론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천사의 섬김을 성경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4에 보면,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천사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맹렬히 타는 불 가운데서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천사가 곁에 서서 말씀하시는 모습을 사도바울은 보았습니다. 결국 누가 함께 하신 것을 본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천사들과 더불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바로 곁에 서서 계십니다. 물론 이 예배 시간에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날마다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먼저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폭풍이 아무리 거세다고 할지라도 그 폭풍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예수님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말씀을 들었습니까?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명이 무엇입니까?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로마에 가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사명을 이루게까지 눈동자같이 지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완벽한 폭풍인 퍼펙트 스톰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무너지지만, 우리들은 사도바울처럼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항상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완벽한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음의 눈을 열고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의 귀를 열고서 우리를 위로하시면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뻐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