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506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5”

(누가복음 18: 35- 43)

 

 

할렐루야! 지난 4월에 제가 살고 있는 교회 사택을 리모델링 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랫 만에 냉장고 안에 있는 모든 식료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꺼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성도님들 가정의 냉장고도 그러하겠습니다만, 저희 집 냉장고 안에도 신선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생선과 계란과 같은 여러 종류의 식료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냉장고 저 안쪽 구석에 보니까 너무 오랫동안 보관하여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악취를 풍기면서 자리만 차지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저는 이러한 냉장고를 보면서,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16에 보면, 우리의 마음에는 성령님께서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이라는 냉장고 문을 활짝 열면 그 속에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하늘의 기쁨과 평안과 소망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음 구석, 구석을 살펴보면 백해무익한 것들이 악취를 풍기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염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려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사나운 멧돼지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염려입니다.

 

왜냐하면 염려가 마음의 냉장고 속에 있으면,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그 귀한 평안을 불안으로, 기쁨을 슬픔으로, 소망을 절망으로 부패시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염려는 우리의 육체의 건강까지도 파괴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냉장고에서 부패한 음식을 제거하는 것은 너무나 쉽고 간단합니다만, 마음의 냉장고 안에서 염려를 제거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쓰레기통에 과감히 버린 것 같은데 그 다음날 들여 다 보면 또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집요한 염려들 가운데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염려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론 우리는 건강에 대한 염려도 많이 하고, 물질에 대한 염려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가장 자주 염려하고 가장 심각하게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녀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아마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자녀에 대한 염려가 하나도 없는 분은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자식들은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다.”는 분이 계십니까?

 

사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든지 못하든지, 취직을 했든지 하지 않았든지, 결혼을 했든지 하지 않았든지, 부유하게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심지어 장애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염려가 끊어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오듯이 끊임없이 염려거리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어머니도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녀에 대한 모든 염려를 끊어버리고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비결을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놀랍게고 그 비결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가정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빠 떡이 먹고 싶어요.’라고 하는데, 어느 아버지가 떡 대신에 돌을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빠 생선이 먹고 싶어요.’라고 하는데, 어느 아버지가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자막)’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염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축복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이상 자녀문제로 염려하지 말고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몇 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자막 첫째: 간절히 기도할 것). 38절을 보면, 한 맹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맹인은 더욱 큰 소리로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멈추어 서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맹인의 소리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맹인의 간절함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간절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다음 두 번째로 기도할 때에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자막 둘째: 구체적으로 기도할 것). 어떤 성도님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매우 바쁘신 분이므로 간단하게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다 아시지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틀린 말을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예수님은 맹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41절을 보면,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그 답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 질문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신 것을 볼 때,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두리 뭉실하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구하는 것을 원하신다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빌립보서 4:6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에 예수님께 단순히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맹인도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 ‘주여 보이기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실까요? 먼저 구체적이지 않고 두리 뭉실한 기도는 간절함에서 나온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간절함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목이 마른 사람은 구체적으로 물을 달라고 기도할 것이고, 정말 배가 고픈 사람은 밥을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냥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하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을 때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았는데 응답해 주시면, 우리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갈 때에 구체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응답해 주셨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나의 아침기도).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염려라는 쓰레기가 있습니다. 특히 자녀에 대한 염려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쓰레기를 제거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에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첫째는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는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자녀에 대한 모든 염려를 감사와 평안으로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부모의 의무입니다. 이러한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