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422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3”

(창세기 50: 15-20)

 

 

할렐루야! 시편 139편에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일찍이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만드신 사람의 몸이 얼마나 신비로운 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의사들도 해부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경이롭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 편도체의 역할을 알게 되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혹시 목 부근에 있는 편도선 말고 편도체에 대하여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편도체는 양쪽 관자놀이 안쪽에 위치해 있는 아몬드 모양의 작은 신경 다발인데요, 우리 몸에서 조기경보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만약에 건물 안에 화재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서 재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도 위험에 처하였을 때에 가장 먼저 알려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편도체입니다. 예를 들면, 야구공이 날라 올 때 순간적으로 몸을 숙이게 하는 것도 편도체이고, 산에서 멧돼지를 만났을 때에 순간적으로 도망을 치게 하는 것도 편도체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편도체에 이상이 생겨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작동을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피부에 조그만 한 점만 보아도 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날씨가 조금만 이상해도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불안과 초조함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불안과 초조함은 편도체에 이상이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로 어떤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바로 고난이라는 장애물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그 말씀에 순종할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월급을 받는 날이나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나 아니면 자녀가 시험에 합격하는 날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어떤 날도 찾아옵니까?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보는 날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아니면 몸이 아파서 입원을 하는 날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녀의 앞길이 막혀 버리는 날도 찾아옵니다.

 

이러한 고난들이 장애물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앞길을 가로막을 때 마다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비록 고난의 장애물이 있는 날이라고 할지라도 항상 기뻐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고난이라는 장애물 앞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였던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첫 번째 자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들 가운데 요셉을 더 사랑하여 채색 옷을 지어 입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채색 옷은 단순히 알록달록하게 염색을 한 옷이 아니라, 찬양대 가운처럼 긴 소매가 있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옷을 말합니다. 당시에 이런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오직 왕족이나 족장, 또는 족장의 후계자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의 인생에는 거대한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장애물의 이름은 버림받음이었습니다. 먼저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버림을 당하였습니다(자막 첫째 : 형들에게 버림당함). 평소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요셉을 시기하던 형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더욱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요셉을 발견한 형들은 얼마나 요셉을 미워하였든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요셉은 당연히 형들에게 제발 살려 달라고 눈물로 애원하였지만 형들은 미련 없이 동생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날마다 누구를 기다렸을까요? 당연히 아버지 야곱이 달려와 주기를 기다렸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끝내 아버지는 그를 구하기 위하여 달려와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가족으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보디발에게 버림을 당하였습니다(자막 둘째 : 보디발에게 버림당함). 요셉이 애굽에 팔려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총무로 세워서 자기의 집과 모든 소유물을 관리하도록 맡겼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거짓말로 요셉을 모함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보디발은 누구의 말을 더 믿었습니까? 요셉의 말이 아니라 아내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결국 요셉은 믿었던 주인에게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요셉은 술맡은 관원장에게 버림을 당하였습니다(자막 셋째 : 관원장에게 버림당함). 요셉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바로의 술을 맡은 관원장과 떡을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을 해 주었습니다. 먼저 술을 맡은 관원장에게는 사흘 안에 복직이 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떡 굽는 관원장에게는 사흘 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나쁜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요셉이 해석대로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나가시거든 꼭 나를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을 감옥에서 나간 다음에 곧 바로 요셉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셉은 누가 가장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을 믿어주신 못한 보디발이었을까요? 아니면 은혜를 망각해 버린 술 맡은 관원장이었을까요? 만약에 우리 성도님들이 요셉이라면 누구를 가장 원망하였을 것 같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하나님을 가장 원망하였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믿는 하나님은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요셉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다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셉을 능히 건져 내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이 버림받음을 당하는 순간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입만 열면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은 생애를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살아갔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보면,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든 일들이 원하는 대로 되면 하나님께 나아와서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만, 갑자기 인생에 고난이라는 장애물이 나타나면 미련 없이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고난을 당할 때 가만히 계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를 않았습니다.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비결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요셉은 형들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형들은 아버지인 야곱이 죽게 되자, 혹시 요셉이 복수를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요셉에게는 특별한 렌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렌즈입니까? 하나님의 섭리 렌즈(자막)였습니다. 즉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고난만 바라보지만, 요셉은 그 고난의 뒤편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남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이 버림받음의 장애물을 만났지만, 그 장애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인 아브라함의 후손과 더불어 많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뜻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이루시는 분임을 확신하였을 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었는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십자가를 지는 일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섭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순종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실패자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마침내 구원을 이루신 줄 믿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아메리칸 코로니라는 호텔이 있습니다. 그 호텔 로비에 가면 호텔 주인이 직접 손으로 쓴 찬송가 가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주인의 이름은 호래이쇼 스패포드입니다. 그는 19세기의 욥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1870년에는 그의 아들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다음 해인 1871년에는 시카고 대화재로 그의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은 아내와 네 명의 딸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유럽으로 여행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배가 출발한 지 일주일 만에 사고로 대서양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아내에게 한 통의 전보를 받았습니다. “나만 홀로 살았음.” 이러한 비보를 들었던 스패포드가 아내에게 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사고 해역을 지나갈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찬송을 작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아내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섬기던 집은 호텔이 되었습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당한 버림받음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당한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당한 고난을 어떻게 하실까요? 당연히 그 고난을 통하여 놀라운 뜻과 계획을 이루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고난을 고난으로 그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고난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