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408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1”

(빌립보서 4:1- 7)

 

 

할렐루야!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하지 말라고 금지하신 명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 번에 걸쳐서 금지하신 명령 중의 하나는 바로 염려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몇 년 전에 제가 기도원에 갔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에 인적이 드문 기도원 뒷산에 올라갔었는데요,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음도 없었고, 공기도 맑고 신선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큰소리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시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창 찬양을 하는데 갑자기 전날 들었던 뉴스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떤 뉴스인가하면, 삼척에서 약초를 캐던 두 사람이 멧돼지에게 공격을 당해서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심하게 다쳤다는 뉴스였습니다. 그 순간 만약에 거대한 멧돼지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공격을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마땅한 무기도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핸드폰조차도 숙소에 두고 나왔습니다. 따라서 만약에 제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에 119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되자, 저의 입에서 찬양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은 근심과 불안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산을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날 저는 멧돼지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멧돼지 발자국도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실제로는 멧돼지보다 더 무서운 짐승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 짐승은 눈에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짐승은 우리에게서 너무나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 버립니다. 그 짐승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염려라는 짐승입니다. 문자적으로 염려란 앞날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을 말합니다. 만약에 우리 성도님들이 이 시간 앉아 계시는 의자에 가시가 돋아 있다면 육체적으로 얼마나 불편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염려라는 짐승이 나타나기만 하면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염려라는 짐승이 언제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만약에 뭐뭐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만 해도 염려라는 짐승이 여러분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에 내가 암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사업이 부도가 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 자녀가 취업이 안 되거나 결혼을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염려라는 짐승이 나타나서 우리를 공격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주신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빼앗아 갑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체까지도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건강을 빼앗아 갑니다. 실제로 염려는 혈압을 올리기도 하고, 두통을 유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장기를 손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들에게 병명과는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열 받지 마세요.’

 

얼마 전에 제 친구를 만났는데요, 살이 쏙 빠져 있었습니다. 원래 그 친구는 살을 빼기 위해서 비싼 헬스장도 다니고, 다이어트 식품도 먹었는데 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돈 한 푼 안들이고 가장 단시간에 가장 확실하게 살을 빼는 비결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비결이 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스트레스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염려라는 짐승에게 공격을 당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예전에 비하면 점점 더 안전하게 짓고 있습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예전에 비하면 점점 더 안전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태풍에 대한 기상청의 예보도 점점 더 정확해 지고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약도 점점 더 좋은 약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염려라는 짐승은 이 지구상에서 멸종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짐승은 멧돼지 보다 더 더 번식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염려라는 짐승을 물리칠 수 있는 비결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비결을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이 빌립보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까? 먼저 사도바울은 예순이 넘은 노인이었습니다. 30년 동안 수천 키로를 걸어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기도 하였고, 돌에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폭풍우와 굶주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몸은 상 할대로 상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옥 밖에서는 교인들끼리 파가 갈려서 서로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목회자들은 바울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도바울은 로마황제의 재판을 앞두고 있었는데요, 로마황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면 로마시민들이 기뻐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염려라는 짐승이 공격하기가 제일 쉬운 대상 1호가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어떻게 고백하였습니까? 빌립보서 1:18에 보면, “나는 염려하고 또한 염려하리라.”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 4:4에서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즉 기분 좋은 때 한 순간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한 주간 동안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목사인 저도 그렇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솔직히 우리들 중에 단 한 시간이라고 염려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바울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염려라는 짐승이 우리를 향하여 슬금슬금 다가올 때, 그 짐승에게 잡아먹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먹이 감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짐승을 물리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염려라는 짐승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주 안에서여기서 주 안에서는 다른 말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것은 두 가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고 계신다는 믿음과 둘째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사도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믿음을 붙들었기 때문에 옥중에서 모든 염려를 물리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이사야 선지자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염려라는 짐승이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나라를 이끌어가던 웃시야 왕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는 왕의 자리가 비었기 때문에 만약에 이 틈에 이방민족이 쳐 들어 오면 어떻게 하지하면서 염려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모습이 무엇입니까? 이사야서 6:1에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유다 왕국의 왕좌는 비어 있지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이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26:3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들이 다가올 때마다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염려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죄 입니까? 우리가 염려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평강과 기쁨과 소망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산에서 멧돼지를 만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 멧돼지보다 더 무서운 짐승이 있습니다. 바로 염려입니다.

 

이러한 염려는 이길 수 있는 비결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고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