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325 대구동산교회 종려주일오전예배설교

예수, 예수 7”

(누가복음 22:14- 23)

 

 

할렐루야! 교회달력에 보면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환영을 하였는데요, 그때 사람들이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뜨거운 환영 속에서 입성을 하신 예수님은 성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교회는 매년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 아침에 성찬식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의 심령이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저는 먼저 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심 순덕 시인이 쓴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입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어리로 홀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이 속 썩여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밤중 잠에서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를 볼 때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얼마나 죄송한 일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어머니보다도 더 죄송하게 생각해야 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를 당연시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가시질 때에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예수님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헤롯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렸는데, 예수님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운 다음에, 십자가 위에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았는데요, 예수님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상시에 어머니의 일상생활을 보면서 아무런 감동이나 느낌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아무런 감동이나 느낌이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사야 53:3에 보면,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가복음 22장과 23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볼 때,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당연시하는 것보다도 더 큰 죄는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사건의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등장을 합니까?

 

먼저 연약한 제자들이 등장을 합니다(첫째: 연약한 제자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실 때에 누구보다 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갔을 때에 무엇을 하였습니까? 45절에 보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부탁하셨지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에 예수님을 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물론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그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라고 큰 소리를 쳤던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 사건에는 악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둘째: 악한 사람들). 48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명이었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겉으로 볼 때 그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기 위하여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의 입맞춤은 존경의 입맞춤이 아니라 배신의 입맞춤이었습니다. 겨우 노예 한 명의 몸값에 불과한 30이라는 돈에 눈이 어두워서 예수님을 팔아 버렸던 것입니다. 얼마나 사악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가룟 유다 보다 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은 로마군인들이 아닙니다. 바로 거룩한 옷을 입고 다니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호시탐탐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을 때에도 그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악한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로 십자가 사건에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등장을 합니다(셋째: 이기적인 사람들). 이들은 진리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그는 아무리 재판을 해 보아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만한 죄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앞길이 막히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이기적인 사람은 헤롯 왕이었습니다. 23:8 이하에 보면, 헤롯 왕은 평소에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행하시는 신기하고 놀라운 이적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디오 빌라도가 헤롯을 보내었을 때 매우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답조차도 하시지를 않자 어떻게 했습니까?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9절에 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십자가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바로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십자가에 사건에 등장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들입니다(네째: 무지한 사람들). 먼저 대제사장들의 선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쳤던 무리들은 그들이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대신에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도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았던 로마군인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왔던 여인들도 예수님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34절에 보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은 누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먼저 연약한 제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악한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빌라도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무지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이 더 있습니다. 누구일 것 같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제자들보다도 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가룟 유다보다 더 사악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빌라도 보다 더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백성들보다 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셨고 피를 흘리신 줄 믿습니다. 따라서 오늘 성찬식에서 떡을 받으실 때에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찢으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잔을 받으실 때에 역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피를 흘리신 주님의 보혈을 기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