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318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예수, 예수 6”

(누가복음 18:31- 34)

 

 

할렐루야 오늘은 사순절 기간 가운데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예수, 예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달에 우리교회 교역자들과 함께 일본에 갔을 때에 하루 종일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인데요, 아무리 살펴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 일본에도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가 세워진 교회를 찾는 것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날 오후쯤에 어느 교역자가 갑자기 저기 십자가 있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십자가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리고 아담한 교회 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보는 순간 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저를 비롯한 교역자들 중에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소름이 끼치거나,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반대로 기쁨과 평안이 넘쳐났습니다. 만약에 성도님들이 불교나라인 태국이나 캄보디아를 여행하다가 십자가를 보면 역시 저희들과 같이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십자가가 원래부터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착한 물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십자가는 로마인들에게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자막: 첫째: 로마인에게 협오스러운 것). 왜냐하면 십자가는 사람을 죽일 때 사용하는 사형형틀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 절두산에 가면 천주교 순교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당시에 천주교인들을 죽일 때 사용되었던 단두대가 있는데요, 단두대를 보면서 기쁨과 평안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두대 모양의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기만 해도, 아니 생각만 해도 너무나 소름이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단두대나 교수대처럼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사형형틀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고안해 낸 사형형틀 중에 가장 극심한 고통을 가장 오랫동안 느끼게 하면서 죽이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십자가형은 아무에게나 선고되지 않았습니다. 국가반역자나 아니면 도망한 노예와 같은 흉악범에게만 선고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할지라도 로마시민을 가진 사람에게는 절대로 십자가형을 선고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형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네로를 비롯한 로마황제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그토록 박해를 하였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둘째: 유대인에게 수치스러운 것). 신명기 21:23에 보면, 범죄한 사람을 죽여서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밤새도록 두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구약시대부터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을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도 어디에서 못을 박았습니까? 거룩한 예루살렘 성 안이 아니라 성 밖에서 형을 집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는 도덕적인 사람들에게 기분 나쁜 것이었습니다(세째: 도덕적인 사람에게 기분 나쁜 것). 도덕적인 사람이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욕도 하지 않습니다. 도둑질도 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친절하게 도와줍니다. 그래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꽤나 높은 점수를 줍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생각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아도 하나님의 기준데 도저히 이를 수 없다고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로마인에게는 혐오스러운 것이었고, 유대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사람들에게는 기분 나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셨겠습니까? 먼저 오늘 본문 31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일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나요? 3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다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하실 때에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 고난과 수치를 당하실 때에도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2:2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나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그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앞에 있는 기쁨이란 무엇입니까? 그 기쁨이란 오늘 세례를 받는 성도들을 바라보는 기쁨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분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죄 씻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죄 씻음을 받았습니까? 선행이나 공로로 죄 씻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서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물론 이미 세례를 받은 저와 우리들도 역시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처럼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기쁨과 영광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중직자로 뽑히게 될 분들만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험한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질 때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험한 십자가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