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225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예수, 예수 3”

(누가복음 8: 26- 39)

 

 

할렐루야! 오늘은 사순절 기간 가운데 두 번째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예수, 예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오늘 저녁에 폐막을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TV를 통하여 많은 경기 장면들을 보았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이 있다면 쇼트트랙 결승전 경기에서 금메달이 유력하던 우리나라 선수들끼리 부딪혀서 넘어졌을 때 입니다. 왜냐하면 영점 몇 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한 번이라도 넘어지면 아무리 세계 신기록을 가진 선수라고 할지라도 메달을 딸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넘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은 동계올림픽 빙상경기에서만 일어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경기에서도 이러한 상황들이 가끔씩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항상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던 김 홍기 성도님처럼 건강의 문제로 인하여 갑자기 넘어질 때가 있고, 물질의 문제로 인하여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로 인하여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물론 넘어질 당시에는 빨리 일어나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도 힘을 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열심히 응원을 해줍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저 만치 앞서간 사람을 따라 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에도 보면, 인생의 경기에서 본의 아니게 넘어진 세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26절 이하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의 동쪽 해안에 있는 거라사인이라는 작은 마을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자기 집에서 살지 않고, 무시무시한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귀신이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대답을 하였습니까? ‘군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군대는 헬라어로 레기온인데요, 레기온은 우리나라 군대의 중대나 대대 규모의 군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무려 6천명으로 구성된 군대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에 사로잡혔다면, 이 남자는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귀신들에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다음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만난 사람은 열루증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시간 관계상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4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기 위해서 가시는 길에 수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예수님의 소문이 온 유대 땅에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소문과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였다는 소문, 그리고 중풍병자를 비롯한 모든 환자들을 고치셨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향이었던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여 죽이려고 하였지만, 다른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하여 구름떼와 같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그 무리들 속에서 예수님은 열 두해 동안이나 끊임없이 피를 흘리면서 살았던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와 그의 딸을 만나셨습니다. 41절에 보면, 예수님은 죽어가고 있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길을 가실 때에 많은 무리로 인하여 빨리 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혈루증 여인을 치료하는 동안에 그만 야이로이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러한 소식을 들었으면 한 발 늦었구나.’하고 발길을 돌리셔야 정상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웃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누가복음 8:26 이하에서, 전혀 상관이 없는 세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그들은 모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첫째: 절망에 빠진 사람들). 먼저 귀신 들린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도 남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남들처럼 멋있는 옷을 입고서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오손 도손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낮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침대에 편안히 잠을 자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도 점잖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군대귀신이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옷을 다 벗은 채로, 무덤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밤낮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돌로 자기의 몸을 스스로 상하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수많은 귀신들을 물리칠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혈루증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레위기 15장에 보면, 혈루증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혈루증은 하나님께서 부정하게 여기시는 질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혈루증에 걸린 사람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만진 사람이나 물건까지도 다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무려 12년 동안이나 가족들의 모임이나 예배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병을 고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병원과 의사를 찾아다녔겠습니까? 재산을 다 허비할 정도로 열심히 찾아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병은 점점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질병을 물리칠 힘이 그녀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당장이었던 야이로는 어떠할까요? 그는 예수님이 만난 세 사람 중에 가장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부럽지 않은 물질도 가졌고, 권력도 가졌습니다. 사회적으로 아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외동딸이 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그들은 모두 절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둘째: 절박한 사람들). 먼저 군대귀신 들린 사람은 얼마나 간절히 귀신의 괴롭힘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겠습니까? 귀신은 하루에 한 두 시간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24시간 단 1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딱 한 시간만이라도 귀신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을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44절에 보면, 그녀는 자신이 부정한 여인이라는 것을 너무나 알고 있었지만 무리들 사이에 들어가서 감히 예수님의 옷을 만진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지긋지긋한 혈루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간절함은 회당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어떤 모습으로 초청을 하였습니까? 회당장이라는 지위에 어울리는 품위와 예의를 갖추어서 예수님을 정중하게 초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41절에 보면, 예수님의 발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즉 이마에 흙을 묻힌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였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세 사람 모두 절박함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공통점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 32절에 보면, 군대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귀신들이 다 돼지 떼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36절에 보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39절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집으로 돌아가서는 하나님의 큰일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혈루증 여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옷자락을 만진 다음에 육신의 질병만 치유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영혼까지 온전히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야이로의 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5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이를 향하여 아이야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람어로 달리다움인데요, 어머니가 늦잠을 자는 아이들을 깨울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늦잠을 자는 아이를 깨우듯이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셨습니다. 결국 이 세 사람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마귀를 이기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혈루증 여인을 고치는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이기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까지도 이기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만난 세 사람은 모두 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절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본의 아니게 인생의 경기에서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주님 달려 죽으신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에 우리는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줄 믿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