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218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예수, 예수 2”

(누가복음 4:14- 30)

 

 

할렐루야! 지난 주 수요일부터 2018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사순절 기간 중에 첫번째 주일인 오늘 아침에 예수, 예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테니스 선수 중에 정현이라는 선수가 있는데요, 그 선수를 모르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왜냐하면 그는 22살의 젊은 나이에 2018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세계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리나라 최초로 4강에 진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선수가 우리교회 고등부 출신이고, 그의 부모와 형제들이 우리교회를 출석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그 선수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특히 이번 설명절 때 고향에 내려왔다가 오늘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을 한다면, 예배의 분위기는 지금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를 것 같습니다. 먼저 정현 선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빈 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현 선수가 어떤 모습으로 찬송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말씀을 듣는지 관심을 가지고 쳐다 볼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일어났음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하실 당시에, 벌써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 있었고, 뭇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누가복음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을 방문하시기 약 1년 전에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 번째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는 장사꾼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버나움에서는 중풍병자를 고치기도 하셨고, 열두 해 열루증을 앓는 여인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심지어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소문들은 정현 선수가 테니스 세계 4강에 들어갔다는 소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질 수록 나사렛 동네 사람들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 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나사렛 동네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사렛이라는 동네 이름은 네체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이름인데요, 그 뜻이 어린 싹입니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동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산골마을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의 나사렛은 100명에서 200명정도의 주민이 거주하였고, 가옥의 구조를 볼 때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을 때에 어떻게 말하였습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토록 무시를 당하던 나사렛 동네사람들 중에는 어릴 적에 예수님과 함께 숨박꼭질을 하면서 놀았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수였던 예수님이 직접 만든 식탁이나 의자를 사용하고 있는 어르신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지금도 그들과 함께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사렛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무명의 동네를 빛내 최고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오시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금의환향이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오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회당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회당 안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시지요?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회당으로 몰려와서 예수님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당시에 회당 예배의 순서는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순서와 비슷했습니다. 먼저 예배 기원을 한 후에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도신경을 암송하듯이 신명기 6장에 나오는 쉐마의 말씀을 암송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대표기도를 드린 후에 성경봉독이 있었습니다. 이때 회당장이나 특별히 지명된 자가 율법서와 예언서를 낭독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성경봉독 시간이 되자 예수님이 일어 서셨습니다. 그러자 성경을 맡은 자가 예수님에게 이사야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사야서는 다른 성경에 비하여 분량이 많은 편입니다. 모두 66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렇게 많은 말씀들 중에서 예수님은 아무 장이나 읽으신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611절과 2절 말씀을 찾아서 봉독을 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18절과 19절에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셨는데 설교시간이 30분이었는지 3시간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설교의 결론은 아주 분명하고 간단하였습니다. 21절에 보면,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2절을 보면, 그들이 모두 다 놀랍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에 놀랐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한 가지인데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은혜로운 말때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입니까? 18절 이하에 보면, 네 종류의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가난한 자와 포로된 자와 눈먼 자와 눌린 자입니다. 이들은 여러가지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소수의 소외계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가난하게 되었고, 영적으로 마귀의 포로가 되었고, 영적으로 눈이 멀게 되었고, 영적으로 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이 땅에 이 땅에 보내실 것이라는 말씀이 이사야서의 내용입니다. 특히 19절에 보면, 그 메시아를 통하여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혜의 해는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희년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희년이란 50년마다 나팔을 불면 모든 채권자는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고, 매인 자들에게 자유를 베풀어 주는 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설교는 모든 사람의 죄값을 탕감해 주는 영적인 희년의 축복이 예수님을 통하여 지금 이 순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나사렛 사람들은 이러한 은혜의 말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충격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운 설교를 들었던 나사렛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예수님에게 앵콜 집회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크게 화가 나서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낭뜨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넷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였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22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지금 나사렛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요셉의 아들, 즉 사람의 아들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나사렛 사람들이 구름떼와 같이 회당에 모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위하여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모인 목적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 목적은 단지 사람의 아들에 불과한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행한 이적들이 진짜인지 아니면 헛소문인지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선지가가 고향에서는 환영받는 자가 없느니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결국 고향 사람들이 선지자를 배척하는 이유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편견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거부하였습니다. 대신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의 문은 모든 죄인들에게 활짝 열려 있지만 실제로 그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25절 이하에 보면, 실제로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수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시돈 땅에 사는 사렙다 과부 한 사람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사 시대에는 이스라엘 땅에 수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수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 한 사람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편견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 방울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하고서,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신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성도님들도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편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여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