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211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예수, 예수 1”

(누가복음 1:1-4)

 

 

할렐루야! 매년 부활절이 다가오면 자주 듣는 단어 중의 하나는 사순절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중에 사순절이 과연 어떤 절기인지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사순이란 말은 숫자 40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노아 홍수 때 밤낮으로 비가 내렸는데, 40일 동안 내렸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여 광야 생활을 할 때도, 40년 동안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해석할 때, 40이라는 숫자는 고난과 시련과 인내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래서 AD 325년에 있었던 니케아 공의회 이후로 기독교에서는 부활절이 다가오면, 40일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회개와 절제와 금식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부활절이 41일이기 때문에 사순절이 220일 전후부터 시작될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는 이번 주 수요일인 14일부터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40일 가운데 주일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하여 예수, 예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특히 사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을 통하여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누가복음을 기록한 저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당연히 누가입니다. 골로새서 4:14에 보면 사도바울은 사랑받는 의사 누가라고 표현한 것을 볼 때, 누가는 직업이 의사이었고, 사도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에 참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도행전까지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원래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정확히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당연히 이방인에게 있었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본문 3절에도 보면, 그는 누가복음을 이방인이었던 데오빌로 각하에게 써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이렇게 많은 분량의 복음서를 보낸 구체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목적을 4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제가). 우리는 누가의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구름 같은 지식이고, 또 하나는 산 같은 지식이 있습니다.

 

먼저 구름 같은 지식은 구름처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이리저리 요동하다가 쉽게 사라지는 지식입니다. 제가 십여 년 전에 우리교회 성도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갔을 때에 요르단에 있는 느보산에 올라갔습니다. 신명기 34장에 보면, 느보산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 입구까지 인도한 후에 죽었던 산이었습니다. 얼마나 의미가 깊은 산입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구름에 가려서 한 치의 앞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가 요단강인지, 어디가 여리고성인지. 그런데 우리 일행이 산꼭대기에 있는 모세 기념교회에 도착하는 순간, 구름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더니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구름처럼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 중에도 기초가 없거나, 있더라도 심히 약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뭐하고 한 마디 하면 한 방에 흔드리는 지식이 있습니다. 바로 데오빌로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그러했습니다. 데오빌로는 그동안 예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지식도 있었고, 놀라운 기적에 대한 지식도 있었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지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식에 뿌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풍조와 사상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믿음과 삶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데오빌로가 가지고 있는 구름 같은 지식이 느보산 같이 흔들리지 않는 지식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4절에서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더 확실하게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스팔레이안인데요, 이 단어가 사도행전 5:23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사도들을 대제사장들이 시기하여 옥에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들이 옥문을 어떻게 조치했겠습니까? 당연히 느슨하게 잠군 것이 아니라 절대로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그리고 흔들리지 않게 잠그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 보면, ‘든든하게 잠기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든든하게라는 단어가 바로 아스팔레이안입니다. 결국 누가는 데오빌로의 가지고 있던 지식들이 확실하고, 확고하여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지식이 되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누가는 데오빌로가 무엇을 확실히 알기를 원기를 원하였습니까? 먼저 하나님을 확실히 알기를 원하였습니다(첫째: 하나님을 확실히 알라). 시간 관계상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누가복음 1장과 2장을 통하여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사 가브리엘이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대화하는 모습과 예수님이 어머니인 마리아를 방문해서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누가가 특별히 기록한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 당시에 데오빌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분은 인간 세상에 직접 관여하는 분이 아니라, 구경꾼처럼 가만히 지켜보는 보는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가랴의 간구를 직접 들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간구였나요? 아들을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그리고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직접 천사를 보내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8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라 마리아와 함께 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31절을 보면, 마리아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하실 정도로 전능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산같이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확실히 알기를 원하였습니다(둘째: 예수님을 확실히 알라).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에도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3절에 보면, ‘예수님은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평범한 목동이었던 다윗을 왕으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신 것처럼, 다윗의 후손 중에 지극히 평범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서 영원히 다스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예수님은 세례요한이나 엘리야처럼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여 자연스럽게 태어난 분이 아니고,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신앙고백: 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따라서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신인 존재가 아닙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데오빌로가 확실히 알기를 누가는 원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구원을 확실히 알기를 원하였습니다(세째: 구원을 확실히 알자). 76절에 보면, 사가랴가 드디어 세례요한을 낳은 다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예언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 사가랴는 세례요한이 앞으로 어떤 사명을 감당할 것인지를 말씀하였는데요,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는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죄 사함을 말미암는 구원은 누구를 통하여 얻을 수가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얻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를 믿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에 천사가 목자들에게 어떻게 말을 합니까?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2:11).” 이러한 구원에 대하여 누가는 데오빌로가 확실히 알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사실 우리들도 데오빌로처럼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이 혹시 구름과 같이 흔들리는 지식입니까? 만약에 구름과 같이 흔들리는 지식이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지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이 흔들리면 믿음도 흔들리고, 믿음이 흔들리면 삶도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과 산과 같이 견고하다면, 우리의 믿음과 삶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산과 같이 확실한 지식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입니다. 셋째는 구원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러한 지식으로 인하여 날마다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