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204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나부터 예배 5”

(로마서 12:1-2)

 

 

할렐루야 지금까지 저는 금년도 우리교회 표어인 나부터 예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습니다만, 우리에게 주신 말씀들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의 예배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혹시 성도님들은 지금까지 드린 많은 예배들 가운데 결코 잊을 수 없는 예배가 있습니까? 저는 지금으로 부터 4년 전인 2014325일 화요일 아침에 드린 예배를 결코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그 예배는 우리나라에서 드린 예배가 아니라 필리핀에 있는 일로일로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드린 예배입니다.

 

제가 그 예배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예배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예배는 신학교 건물을 봉헌하는 예배였는데요, 우리나라도 특별한 예배인 경우에는 순서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는 각오를 하였습니다만, 순서가 많아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순서가 영어가 아닌 현지어인 일롱그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에어컨도 없는 예배당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에게 큰 기쁨을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 그분은 강대상에 올라가자마자 이렇게 두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바로 축도를 맡은 분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저도 모르게 끝이다.’라고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의 모습이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에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축도하기 위하여 손을 들면 모두들 표정들이 환하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축도를 한다고 해서 너무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축도와 함께 예배가 다 끝이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축도와 함께 또 다른 예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에서 그 예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시면 사도바울은 어떤 단어로 12장을 시작합니까? “그러므로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네 글자는 로마서 1장에서부터 11장에 이르기까지 사도바울이 했던 모든 말씀을 함축해서 담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역시 네 글자의 한문으로 요약하면 이신칭의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열심히 선행이나 공로를 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을 때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인이 될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해주신 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은혜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입은 저와 여러분들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세상의 헛되고 헛된 것들을 예배하면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부터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헌금을 통하여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주일마다 이렇게 모여서 공적인 예배를 드린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드리는 공적인 예배도 중요하고 귀하지만, 공적인 예배가 축도와 함께 끝이 나는 순간부터 또 다른 예배가 시작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배가 어떤 예배입니까? 바로 삶의 예배입니다. 1절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권하고 있습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 몸이란 우리의 육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 뿐 만 아니라 시간과 물질, 재능 등 우리의 인생 전부를 가리킵니다.

 

결국 주일에 딱 한 번, 한 시간 예배를 드린 것으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우리의 삶 전체를 드리는 것이 어떤 예배가 된다고 했습니까?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새 번역 성경에 보면, ‘영적 예배합당한 예배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예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성도들이 공적인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삶의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삶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50번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갈 때 성경암송을 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책상에 앉아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잔디밭에 앉아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삶의 예배란 비록 찬양을 부르지 않거나 기도를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첫째: 자족하는 마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자족하며 사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모든들 조금만 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학생들은 조금만 더 성적이 올랐으면, 직장인들은 조금만 더 승진했으면, 여자들은 조금만 더 날씬했으면, 남자들은 조금만 더 좋은 차를 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느 기자가 세계적인 부자였던 카네기에게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카네기는 조금만 더 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원망과 불평의 소리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성도들이 자족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암에 걸린 성도가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족하고 감사하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물론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놀라운 비결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4:13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사도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

 

결국 우리의 능력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대단하시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누가 영광을 받습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장에 도착하자마자 기도하고, 틈만 있으면 성경을 읽는다고 할지라도, 입만 열면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면 누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높고 위대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둘째: 선한 행실). 마태복음 5:16에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삶의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을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썩어져 가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한 푼이라고 더 움켜쥐려고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베풀어 주려고 애를 쓰라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섬김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노력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대가 얼마나 음란합니까? 올림픽게임이 열릴 때마다 그 감동이야기와 화려함 뒤에 부끄럽고 불편한 진실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콘돔이 무려 11만개가 무료로 배포된다고 합니다. 선수 한 명당 36개꼴이라고 하는데요, 역대 동계올림픽 최다 기록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음란과 불륜 그리고 혼전관계가 문화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거룩하게 순결을 지키면서 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바보라고 비웃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는 그들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우리의 아버지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삶의 예배입니다.

 

세 번째로 전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세째: 전도). 사도행전 1:8에 보면 예수님은 복음을 들고 전도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내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전도는 누구를 증언하는 것입니까? 교회 건물이나 자신의 성품이나 능력을 증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어떤 사람은 우리가 전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겠지만, 어떤 사람은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하면 그 사람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릴까요?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도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주보를 보면, 예배의 제일 마지막 순서는 축도입니다. 그런데 축도를 했다고 해서 예배가 다 끝이 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공적 예배가 끝나는 순간부터 어떤 예배가 시작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까? “삶의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삶의 예배는 어떻게 드릴 수 있습니까? 먼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착한 행실로 들릴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전도로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예배가 바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예배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