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121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나부터 예배 3”

(열왕기상 3: 4- 9)

 

 

할렐루야!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약 20여 년 전에 당시 대통령에게 초대를 받았던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관저에 들어가서 TV로만 보던 대통령 부부와 마주 앉아서 예배도 드리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가 그 목사님에게 물어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가장 먼저 그날 어떤 본문을 가지고 어떤 설교를 하였지 물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그날 식사 메뉴는 무엇이었는지도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그 자리에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가고 싶다고해서 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빽이나 돈이 있다고 해서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왕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다윗 왕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왕들 가운데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왕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도 메시아를 가리켜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만약에 다윗 시대에 어떤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초대를 받아서 다윗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끼 하였다면 주변 사람이 우와하면서 얼마나 부러워하였겠습니까? 아마 저처럼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무엘하 9장에 보면, 다윗 왕과 점심 한 끼가 아니라 일 년 365일 항상 식사를 같이 하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의 이름이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 다윗 왕과 항상 함께 식사를 하는 므비보셋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므비보셋을 볼 때마다 솔로몬은 저 사람은 어떻게 해서 왕과 함께 항상 식사를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까하고 의문을 품었을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왕을 최측근에서 경호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호위무사라고 생각하였습니다만, 자세히 보니까 그는 호위무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왜냐하면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전쟁터에서 다윗 왕의 목숨을 구하려다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항상 왕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솔로몬은 드디어 그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므비보셋은 누구의 손자였습니까? 바로 사울의 왕의 손자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윗이 왕이 될 때까지 그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장본인이 사울 왕이었습니다. 심지어 사울 왕은 골리앗을 죽인 민족의 영웅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딸과 결혼한 사위였던 다윗을 계속해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 숙청대상 1호가 누구였겠습니까? 당연히 사울의 남은 가족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므비보셋을 돌보던 유모는 다섯 살 된 아이를 안고 황급히 도망을 가다가 그만 떨어뜨려 다리를 크게 다치게 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므비보셋은 숨조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꽁꽁 숨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서 므비보셋을 찾아서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때 므비보셋은 이제 죽었구나.’하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땅에 엎드려서 벌벌 떨고 있는 그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은총을 베풀어 주겠다고, 그리고 사울의 밭을 돌려주겠다고, 그리고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순간 므비보셋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다윗이 죽은 개와 같은 자신을 살려줄 뿐만 아니라 은총을 베풀어 줄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렇게 행동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였지만, 그 이전에 누구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까? ‘요나단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이 어떤 사람입니까?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함께 맹세를 한 친구였습니다. 다윗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요나단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였습니다. 한마디로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결국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은총을 입은 것은 그가 다윗을 위하여 무슨 공로를 세웠거나, 아니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다윗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고 앞으로 아무런 도움을 줄 수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이유 즉 아버지 요나단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므비보셋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입니까?

 

그런데 솔로몬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므비보셋 보다 더 복이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일 것 같습니까? 바로 솔로몬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그의 가정에서 있었던 너무나 부끄럽고 충격적인 사건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의 아버지인 다윗과 어머니인 밧세바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맺어진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간음이라는 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 죄를 감추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의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이를 치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건들 이후에 태어난 두 번째 아이가 솔로몬이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어릴 적부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수근수근 거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솔로몬의 형들도 솔로몬을 볼 때마다 부정한 여인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도 솔로몬을 보면서 장차 왕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솔로몬보다는 압살롬이나 아도니야가 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아도니야는 용모가 심히 준수하고 아버지 다윗을 단 한 번도 섭섭하게 해 본 일이 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급하게 왕위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까?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던 아도니야가 아니라 오히려 손가락질 받던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의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어릴 적이 보았던 므비보셋이 가졌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솔로몬의 마음을 오늘 본문 6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솔로몬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신이 왕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공로나 자격 때문에 아니라 오직 아버지 다윗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마치 므비보셋이 아버지 요나단의 때문에 다윗에 은혜를 입은 것처럼, 자신도 아버지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왕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이러한 고백을 볼 때, 왜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를 기쁘게 받으셨는지 알 수가 있지 않습니다. 왜 솔로몬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 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므비보셋처럼 왕과 함께 평생을 식사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처럼 왕이 된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은혜로 충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 이유는 히 3:16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 왕의 보좌도 영광스러운 자리이지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잠시가 아니라 영원토록 머물 수 있는 특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권들을 왜 주셨습니까?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주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결국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이 은혜와 감사로 충만하지 않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나 같은 죄인 주 은혜 놀라워라는 찬양이 저와 여러분들의 찬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아무런 공로가 없었던 므비보셋은 요나단을 통하여 다윗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솔로몬도 아무런 공로가 없었지만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이 은혜로 충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