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20180114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나부터 예배 2”

(요한복음 4:19- 26)

 

 

할렐루야! 제가 중학교 영어시간 때 배운 서양 속담 가운데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속담입니다. 이 속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겉모양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 주변을 살펴보면, 눈에 보이는 외적인 모습은 너무나 화려하고 거창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우리가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배 순서 중에 사도신경과 교독문이 있고, 찬양과 기도가 있고, 말씀 선포와 헌금순서가 있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아무리 화려하고 거창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전혀 기뻐하시지 않는 잘못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열심히 성전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렸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소와 양을 제물로 드렸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내 성전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는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장소의 문제였습니까? 아니면 시간의 문제였습니까? 아니면 순서의 문제였습니까? 겉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 속을 들여 다 보셨을 때 반드시 있어야 할 두 가지가 빠져 있었습니다.

 

요즘 가정마다 실내등을 밝고 전기세가 저렴한 LED등으로 교체를 많이 하는데요, 아무리 모양도 좋고 성능도 좋은 LED등이라고 할지라도 작업자가 깜빡하고서 두 가닥의 전선을 LED등에 연결하지 않거나, 아니면 귀찮다고 한 가닥만 연결하면 어떻게 됩니까? 무용지물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대충 대충 적당하게 사랑해도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예배를 드릴 때에도 역시 적당하게 형식만 갖추면 합격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배 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정답을 오늘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봉독해 드리지는 않았습니다만, 5절 이하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지역에 있는 수가 성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여섯 시쯤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여섯 시는 오늘날 낮 12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물곁에 앉아서 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그 시간에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조심스럽게 마을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화 중에 여인은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자기에게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다는 비밀과 지금 있는 자도 남편이 아니라는 은밀한 사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갑자기 예수님에게 한 자기를 여쭤보았습니다. 어떤 문제에 관한 질문이었습니까?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인은 예수님에게 예배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는데요, 자신이 알고 있는 두 개의 예배 중에 과연 어떤 예배가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참된 예배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인이 알고 있었던 두 개의 예배는 어떤 예배였습니까?

 

첫 번째 예배는 그리심 산에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그리심 예배). 이 예배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로 모여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축복을 선포한 산이 바로 그리심 산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두 번째 예배는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예루살렘 예배). 이 예배는 유대인들이 주로 모여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이 세운 성전과 스룹바벨이 세운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 헤롯 성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여인은 과연 이 두개의 예배 중에 어떤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런지 너무나 궁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예배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예배가 얼마나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최우선 순위를 두지 않습니다. 따라서 찌꺼기 시간에, 찌꺼기 물질로 예배를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인은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하고,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질문들 가운데 예배에 대하여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질문에 예수님은 과연 몇 번째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놀랍게도 예수님은 첫 번째 예배도 아니고 두 번째 예배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둘 다 땡 탈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예배인 그리심 산에서 드리는 예배는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 예배는 진리가 없는 예배였습니다.

 

예배에 진리가 없다는 말은 예배 중에 설교시간이 없거나 성경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22절에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동화에 나오는 산신령 같은 분인지, 아니면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 나오는 염라대왕과 같은 분인지 정확히 모르면 참된 예배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의 39권 성경 가운데 모세오경만 진리의 말씀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의 역사서와 예언서를 통하여 계시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도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도 알지 못한 채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예배인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는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 예배는 영이 없는 예배였습니다. 예배에 영이 없다는 것은 심령 또는 마음이 없는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배를 영혼이 없는 예배라고 합니다. 우리는 매년 성탄절과 새해가 되면 스마트 폰에 불이 날 정도로 많은 문자나 카드를 받습니다. 그때 어떤 것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대충 훑어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을 경우입니다. 그냥 다른 사람이 보낸 것을 전달을 한 경우입니다.

 

유대인들이 드린 예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구약 39권을 다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배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들의 심령과 마음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예배를 어떻게 책망하셨습니까? 마가복음 7:6에 보면,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찾으시는 참된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23절을 다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다고 했습니까? 첫 번째는 영으로 드리는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진리로 드리는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두 개가 모두 다 예배자에게 있어야 참된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둘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가 모두 있는 예배자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 영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 중에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자꾸만 마음이 콩밭으로 도망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 내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라고 구할 때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덮어놓고 믿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만, 예배는 절대로 덮어놓고 드려서는 안 됩니다. 찬양 한 절을 불러도 자기 생각이 아니라 말씀을 붙잡고 불러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도 말씀을 붙잡고, 헌금을 드릴 때에도 말씀을 붙잡고 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은 지난 12월 두 번째 주일 오후예배 때 드린 말씀을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날 설교를 마친 다음에 이 말씀을 주일오전예배에만 참석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성도들에게도 과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어떤 예배인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해에는 입술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