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0180107 대구동산교회 신년주일예배

나부터 예배 1”

(열왕기상 3: 1- 5)

 

 

할렐루야! 2018년 새해를 맞은 우리 동산교회 표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부터 예배입니다(다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부터 예배라는 표어를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된 예배를 비판하고 책망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참된 예배자로 세워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변하면 우리 가정의 예배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우리 교회의 예배가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런 역사를 경험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어느 공항을 가든지 백 미터 이상 높이 솟아 있는 관제탑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관제탑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관제사라고 부르는데요, 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야 하는 일이 바로 관제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관제사는 수 백 명의 승객이 타고 있는 비행기들을 통제하는 교통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지상에서 이륙을 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많은 비행기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착륙을 하기 위해서 하늘에 떠 있는 많은 비행기들도 역시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관제사가 꾸벅꾸벅 졸거나 아니면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자기 기분대로 이륙과 착륙을 지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관제사들은 근무시간 내내 초긴장 상태로 업무에 집중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관제사가 비행기를 통제하는 일보다도 더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일 것 같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워낙 넓으신 분이기에 때문에 너희들 소견에 옳은 대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먼저 신명기 6:5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마태복음 22: 37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적당하게 대충대충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고, 하나 밖에 없는 목숨까지 다하여서 사랑하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수많은 신들이 있지만, 그 신들 중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참 신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종이호랑이처럼 우리에게 복도 내리지 못하고, 화도 내리지 못하시는 무능하신 분이라면 목숨까지 다하여서 사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다 할지라도 우리를 눈의 가시처럼 미워하고 괴롭히는 분이라면 역시 사랑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어떻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예배를 통하여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역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임재 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 예배자들을 만나주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배를 적당하게 대충대충 드린다면, 그 예배가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예배에 임재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예배자들을 쳐다보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열납 하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기쁘게 받지 않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가인이 드린 예배의 장소나 형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가인의 마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심히 성전에 올라와서 수많은 제물을 바치고 분향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들의 제사가 하나님께 아무런 기쁨이나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이 부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린 한 사람을 오늘 본문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누구지요? 솔로몬 왕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솔로몬하면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첫 번째 단어는지혜일 것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스바 여왕아 아니라 일천번제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이후에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일천번제에 대하여 오해를 많이 합니다. 일천번제는 불교신자들이 일천 번이나 절을 하듯이, 솔로몬도 무려 일천 번이나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일천 번제의 정확한 뜻은 일천 마리의 제물을 가지고 번제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번제를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는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즉 솔로몬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다 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솔로몬의 번제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번제를 그토록 기쁘게 받으셨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온전히 드리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첫째: 온전히 드리는 예배). 레위기서에 보면, 다섯 가지의 제사가 나옵니다. 순서대로 말씀을 드리면 번제, 소제, 화목제,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번제와 다른 제사들과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제사들은 제사를 드리고 나면 남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목제는 제사를 드리고 나면 화목을 위하여 사람들이 짐승의 고기를 나누어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건제는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고기를 제사장에게 생활비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번제는 제물을 100% 전부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어로번제라는 단어도 올라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솔로몬의 번제는 체면상 하나님께 일부만 드리고 나머지는 감추어 두는 눈가림식 예배가 아니라, 자신의 가지고 있는 몸과 물질과 시간과 재능과 심지어 생명까지도 하나도 남김없이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 드린다는 헌신의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무리 귀하다 할지라도 일부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을 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솔로몬의 번제는 자원하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둘째: 자원하는 예배). 레위기 1장에 보면 번제를 드리는 구체적인 방법이 나옵니다. 먼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여호와 앞에서 번제물을 잡아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누가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당연히 거룩한 제사장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번제를 드리는 사람은 제사장이 하는 일을 구경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은 제사장이 아니라 번제를 드리는 사람 즉 예배자가 직접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릴 때에 시원한 그늘 밑에 앉아서잘 하나 보자하고 구경을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원하여 번제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혹시 예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경하면서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복된 예배가 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솔로몬의 번제는 최고의 예배였습니다(셋째: 최고의 예배). 레위기에 보면 번제를 드릴 때에 왕은 일천 마리의 짐승을 바쳐야 한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솔로몬은 그렇게 많은 짐승을 바쳤을까요? 자신이 얼마나 재산이 많은지 자랑하고 싶어서 아니라, 하나님은 일천 마리의 번제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솔로몬은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예배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최고의 하나님께 찌꺼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시간과 물질의 찌꺼기를 드리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교회 표어는 나부터 예배입니다. 이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주일 오전예배, 오후예배의 출석에 힘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네 가지 예배 캠페인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10분 일찍 오기, 핸드폰 끄기, 앞자리 앉기, 성경책 가져오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예배를 통하여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